至敬無文(지경무문) 大樂無聲(대낙무성)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거리 곳곳에서 밀양 신공항 유치를 염원하는 현수막을 보는 일에 익숙했었고, 백지화되고 나서는 그 결정에 대한 한탄과 자조 아니면 재추진의 결의 등을 다시 보아야만 했다. 770만 명의 서명이 담긴 상자를 싣고 서울로 향하는 트럭 다섯 대의 사진을 보며 나를 비롯해 그저 일상의 삶을 사는 시민들에게는 참으로 괴리가 느껴졌을 것이다. 지정 거치대를 비웃듯이 아무렇게나 어디에나 걸려있는 직설적 표현의 현수막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대구시민과 경북도민 전체를 합쳐도 500만 명이 좀 넘는데 770만 명이라는 서명인의 숫자는 대단한 행정력의 결과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 시범도시 사업의 협의를 위해 상주시청 일대와 중앙시장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여느 도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로에 면한 간판 전체의 교체와 실내 아케이드 설치가 시장 환경 개선사업의 대표적 결과였다. 공무원의 설명 듣다가 마치 이곳에 와 본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실은 몇 해전 지인이 설계하여 준공을 앞둔 건물을 보러 온 적이 있었던 거리였다. 그 건물이 흰색이었는데 하며 기억을 더듬다가 시장 입구부터 끝까지 한 줄로 나란히 똑 같은 크기와 글자체로 쓰인 간판 뒤에서 찾아내고서 참으로 허탈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시간과 생각을 요하는 은유나 중용 없이, 편재되고 일시적인 감정을 공공에 드러내는 데 아무렇지 않다. 그리고 각자의 고유함은 숨기는 대신 개선과 디자인이라는 획일화에 안도한다.

짧은 기간의 권력은 사람을 난폭하게 만들고 이 사회도 조금은 이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약속 어길 것을 부추기는 ‘위약금 보상’ 혹은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한다는 ‘결사반대’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사회의 정의와 관용에 대해 무심해지고 있다. 소리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은 어찌 보면 사회전체에 팽배하고 있는 불신과 허식에 대한 생존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현수막, 간판 그리고 표피적인 건축물이 만든 이 도시의 모습은 사실 사회적 규약의 허약함과 동시에, OECD국가 중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영세 자영업자의 비율과, 높은 이직율과 창업률이 설명하는 개인의 불안정성에 기인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형사업과 도시마케팅의 수단으로서 활용하고 있는 과장된 건축의 모습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만개의 문제를 정리하는 노트를 만든다고 하고, 정부는 연내에 몇 십 개의 생태하천 몇 개를 만든다 하고, 숙원 사업 해결을 위해 시민 몇 백 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과장된 숫자에 대한 맹신은 현수막의 난립과 간판의 획일화와 같은 결과를 만들 것이 자명하다. 자신의 주장과 과시에 힘을 싣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면서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거치면서 서서히 완성되는 도시 전체의 질서와 안정이 존재할 때 개개의 건물이 가지는 특별함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처럼, 결과를 보여주는 극적인 방식보다는, 지향하는 의의에 대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이해를 먼저 구하는 과정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의 기준과 기본을 형성하는 행정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고, 사회의 일원 각자는 조금은 은유하고 생각하게 하는 생략과 기다림의 건축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衆理皆著, 微者執機. 萬品皆動, 靜者主權.
故辰極晦, 斗樞?, 至敬無文, 大樂無聲. -「質言」

뭇 이치가 다 드러나도 은은한 것이 그 기저를 잡고 있다.
온갖 사물이 다 움직이지만, 고요한 것이 저울질을 주관한다.
그런 까닭에 북극성은 지극히 어둡고, 북두칠성은 희미하다.
지극한 공경은 꾸밈이 없고, 큰 음악은 소리가 없다.

김현진 _ SPLK 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