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대구시민회관
 
불인인지심 (不忍人之心)

몇 년 만에 대구로 돌아온 지인은 한창 공사중인 모노레일 교각들과, 요즘 지어지고 있는 서울 건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새 건물들을 보고 놀라와 하면서도 그곳의 예전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태평로를 지나는 자동차 안에서는 시민회관과 전매청 건물을 보고 이곳은 참 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한 시간의 흐름은 이처럼 보여지는 건축과 도시를 매개로 그 속도를 달리하고 있다. 건축과 도시는 현재를 기록한 것이고 현재에 대한 기록의 누적은 역사로 완성된다. 긴 시간에 걸쳐 도시 안에 존재하는 공간, 건축 그리고 장소들은 그 도시 구성원들의 많은 경험과 기억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 도시 안에서 서로간의 동질감을 지속시키고 정체성이라는 구분을 만들어 내는 기초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건축물이 오래 지속되면 그것의 가치는 공간의 효용과 미의 판단을 넘어서게 된다. 마치 배경처럼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의 바탕이 되어 있고 신체와 사고처럼 우리 자신의 일부를 형성한다.

전세계 열 두 명의 작가들이 각각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스테이’라는 책에서, 작가 김영하는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 망각에 익숙해지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부제의 글에서는, 매년 엄청난 돈을 들여 자신을 꾸미면서도 필사적으로 근대의 기억을 지우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허함을 ’자기 몸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려 애쓰는 늙은 폭주족’의 그것에 빗대고 있다. 우리의 도시들은 큰 범주에서 이러한 ‘단기기억상실증’의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급조된 도시의 풍경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습이고, 우리는 각 장소들의 이전 모습들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기억이 없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인구 250만의 도시 안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만인 과거를 말할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일에는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서도 공동의 가치와 기억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 않는다.

하나의 도시를 완성하고 성장시키는 역사의 연속성은 건축을 통하여 그 모습을 확립하고 또한 변모하면서 그 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은 건축처럼 유형이고 시각적일 수도 있지만 문화와 삶의 내용을 담는 무형의 것일 수도 있다. 곧 미래의 모습을 선보이게 될 시민회관 리모델링과 관련하여 그간 공연, 전시, 행사기록과 자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는 보도와 함께, 지하로 양쪽에 시민회관의 나이만큼 오래된 상가들이 갑자기 철거되는 일들을 보면서 건축물은 많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은 결속감의 바탕이었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가 조금은 서서히 우리에게 스며들기 바라며 그것이 건물의 모습이든 내용의 기록이든 각자의 기억 속에 남은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유지해주기를 바란다. 급격하게 면모하거나 반대로 지독하게 변하지 않는 도시의 모습들 속에서 지속되어야 할 가치들에 한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관이 거의 없던 시설 긴 줄을 서서 태권브이 만화영화나 조용필의 콘서트를 보았거나 소박한 음악 발표회나 전시회를 보러 갔던 추억을 가진 세대라면 시간과 함께 급변하는 도시의 모습으로 인해 현재의 세대와 소통할 공유가치를 잃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동양고전독법 _ 강의”에서 맹자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사람은 남에게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을 설명하면서, 저자 신영복 교수는 우리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인간관계의 황폐화’의 원인을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의 부재라고 말하고 있다.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SNS의 증대는 관계의 허상을 만들고 익명성은 우리 사회로부터 이 지속성의 가치를 잃게 했지만, 건축과 도시의 공간은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이라는 정신적 누적 과정을 담는 바탕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들이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장소와 도시의 질서가 공유될 때 인간관계는 지속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로 완성될 것이다.

김현진 _ SPLK 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