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동성로
 
건축, 즐거운 일상의 상상

건축가란 고향을 건설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집은 제 3의 피부이니, 살갗을 이루는 제1의 피부와 의복이 형성하는 제 2의 피부 다음으로 밀접하다고도 한다. 삶이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제시하고, 발걸음이 닿는 곳에 바닥이 깔려 있으며, 눈동자가 향하는 곳에 시야가 펼쳐지고, 정적이 필요할 때면 문을 닫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집이었다고 예니 에르펜베크는 말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모두는 건축이 한 개인의 피부 그 이상의 복합적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별다른 건축적 차이가 없어 보이는 아파트가 일종의 보편적 가치기준이 되어있음은 건축 혹은 건물의 의미가 문화적 기준보다는 경제적 · 사회적 기준에 더욱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교육과 주거,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요소이자 공간이다. 최근 대학 내에 공적 공간이 줄어들고 상업적 공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교육공간이 지켜야 할 정치적 · 사회적 공공성의 축소로 보고 있는 우려라든지, 주거형태의 60%을 차지하며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이 두 공간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낭만과 향수 가득한 눈으로 골목길을 바라보며 문화라는 이름으로 단지 물리적 상황의 유지에 급급하거나, 고유 기능에 대한 제고와 사회 안전망 구축으로 확장하지 못하는 재래시장 활성화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욕구와 필요가 만들어 놓은 현재의 삶과 도시와 그 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의 실현은 언제나 시대가 완성한 기술을 이용하면서 정신과 욕망을 좇아 가기에 버겁고 우리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은 늘 요원하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과 도시의 풍경은 사실 우리의 욕구와 필요에 전적으로 복종되어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연이나 풍경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실제로는 건물과 건설로 가득한 이 곳에서, 인간의 노력 혹은 제어라는 매개로 건축과 환경이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몇 백 년 이상을 거뜬히 지속하는 건축물과 도시들을 보면서, 쉽게 짓고 쉽게 부수며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가벼이 여기는 현대는 가장 많은 것을 짓고서도 풍토, 민족, 시대 등에 따라 차이를 만드는 건축 양식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 두렵다. 도시나 건축의 수준이 높아지면서도 자연스러워져서 우리가 좀더 소박한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자 사회 공동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공간과 건물 역시 생명체처럼 변화하고 반응하고 적응하도록 할 수 있다. 우리의 상상력이 여기서 발휘되어야 한다. 재생이 필요한 도심 한 가운데 그림처럼 아름다운 주차장 건물을 세운 경우도 있고, 동네 폐업 미용실을 작업실과 주거로 쓰는 건축가들이 있다. 도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시각이 새롭고, 간이 주방과 방 한 두 개 있는 상가는 업무와 거주를 한번에 해결하기에 안성 맞춤이다. green factory라고 불리는 사옥 건물 때문에 많은 구직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회사도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다양한 상상력은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도시를 즐거움으로 채우는 도구가 될 것이다. 도시나 건축은 거대해졌지만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개인의 공간은 이러한 상상력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의 행위와 심성을 담았던 본질에 다가가서 각자의 다양함과 고유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의 회복을 꿈꾼다.

김현진 _ SPLK 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