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르네상스 2008년 8월
 
City as a long story

우리가 어떤 공간이나 도시를 아름답고 인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순간적인 개인적 감성과 동시에 그 공간 속에서 겪게 되는 경험들이 연속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아름다운 공간들의 이미지는 항상 연속적입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공간이나 건축물은 항상 그 모습을 도시라는 긴 story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도시를 말한다는 것
현재 우리는 새로운 도시의 이미지를 찾고 기존의 도시 내에서 사라져가는 공간적 사회적 가치의 재발견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도시를 말한다는 것은 도시라는 유형의 현상에 대하여 어떤 식의 접근을 사고의 출발점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로부터 그 차이를 만듭니다.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만드는 요인들은 많습니다. 도시의 구성요소로 건축을 말하기도 하고 건축의 통합체로서 도시를 말하기도 합니다. 도시를 특정한 건축물이나 한정된 이미지가 아닌 연속적인 공간의 이미지로 읽혀지도록 하기 위해서 ‘길’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요소가 됩니다. 여기서의 ‘길’이란 자동차의 통행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인간의 보행이 함께 존중되는 도시의 통행로를 말하고자 합니다. ‘길’은 물리적으로는 도시 안에서 특정한 건물이나 공간으로 이르기 위한 진입과정입니다.
도시를 공간적이고도 문화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구축요소들의 단순한 합체가 아니라 이러한 물리적인 요소들의 다양한 결합으로 형성되는 무형의 이미지들의 합체로서 도시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정적인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시나리오가 있는 영화나 이야기처럼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 ‘길’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행로, 특히 보행이나 이동의 연속성의 보장은 도시를 연속적 이미지로 기억하게 만들어주고 비로소 도시의 공간들은 마치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장면들로 우리들에게 기억됩니다.

도시 안에서 걷는다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공간들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 알랭 드 보통식의 표현을 빌자면 -이 ‘길’들은 행복의 증거를 보여주고 이 행복에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마주치는 사람이나 잠시 머무는 시원한 나무 한 그루 아래의 휴식처럼, 모든 이미지와 기억들의 합체들이 설령 각자가 실제적 개연성이 없다 하더라도, 기분 좋은 나른함 속에 우리의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걷는 일을 행복한 일로 만듭니다. 걷는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걷는다는 것을 즐거움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의미의 탐색을 통해 길의 존재적 가치를 높일 수는 있습니다. 얼마 전 거리문화시민연대에서 발간한 ‘대구의 재발견-대구 신택리지’라는 놀라운 책 속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작은 통로마다 담겨있는 역사적인 의미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실제로 위 서적에서 소개하는 많은 길들 중에서 ‘삼덕 3가 문화거리’와 ‘진골목’을 직접 가보았습니다. 대구의 골목 혹은 길에 대한 주제로 가장 쉽고 대중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두 곳이지만, 어떠한 선입견도 가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미로 인해 행여 존재하는 그대로의 ‘길’을 느끼지 못할까 봐 지도만 들고 차도 두고 걸어가 보았습니다. 가까스로 골목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진골목’과 담장 허물기의 메카처럼 불리는 ‘삼덕 3가 문화거리’.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이 곳은 스쳐버리기 쉬운 길들입니다. ‘진골목’의 오래된 담장들의 이어짐과 간간이 보이는 작은 마당이나 좁은 통로는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천천히 정취를 느끼며 우리 걸음을 잡아둘 수 있을 만큼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했던 멋진 공간들은 삼덕 3가의 주택가에서 그저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가로수나 벤치처럼 길의 ‘활력’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진골목’처럼 역사적 의미를 가진 건축물의 존재나 가로의 성격만으로도 길은 존재할 수 있고, ‘삼덕동 문화거리’처럼 경계의 삭제 혹은 외부공간의 공공적 성격부여와 같은 건축적 시도와 함께 일상적 공간 속에 인형마임축제 ‘머머리섬’과 같은 문화적 사건들을 삽입하여 활력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은 항상 순례의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만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지나칠 수 있는 통로들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의미를 가지지 않는 우연한 스침 속에서도 그 길이 아름답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하는 것은 바로 그 길 자체의 물리적 형상과 그 구성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입니다. ‘길’을 만드는 것은 구축방식의 측면에서 대부분의 경우 의도되거나 혹은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구축물의 선형이나 식재의 일렬이 만들어내는 연속성이며 인식적 측면에서는 양쪽의 지점 사이를 잇는 선분처럼 사람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선(線)들입니다.

긴 호흡의 길-의미와 형태
연속성의 도시를 이야기하면서 이 연속성을 영화의 시나리오에 비유했는데, 도시는 이러한 연유로 배경 이상의 의미로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Before Sunrise의 후속 편으로 제작되었던 Bofore Sunset이라는 영화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9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의 쉴 새 없는 수다로만 채워진 이 영화 속에는 지상 9m 높이 위에 만들어진 공중정원이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사실 이 정원은 1859년 건설되어 파리의 바스티유와 뱅센느 사이를 잇는 철도를 받치고 있던 아치형 고가교의 레일부분으로서 지하철 개통으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방치된 것을 1990년 파리시의 재개발 계획으로 상부 레일 면에는 총 길이 1.5Km에 이르는 공중정원이, 하부 64개의 아치 속에는 나무, 직물, 종이, 금속, 현악기제조 등의 장인들의 아뜰리에들과 2개의 카페-레스토랑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1시간 3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의 절반 정도에 걸쳐 거의 실시간이라 느껴지는 두 사람의 대화의 주 배경은 이 공중정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내에서는 이러한 긴 호흡을 가지고 산책이나 연속된 이미지로서의 도시에 대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도로교통이 잘 발달되어 어느 지점에서 약속을 잡더라도 러시아워만 아니면 자동차로 - 대중교통이 아니라 - 30분이면 대부분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급한 ‘진골목’과 ‘삼덕동 문화거리’를 의도적으로 거닐기 위해 도심을 걸으며 느낀 것은 교통의 편리함 이면에는 보행의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006년 건설교통부가 지정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에는 ‘동대구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골목에 관한 문화서가 출간된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폭 70m의 ‘젊음과 도약의 동대구로’라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의 항상성
도시의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보행환경이나 공공영역으로서 도시외부공간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건축물이나 공공공간의 계획이 랜드스케이프적인 디자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접한 공간들과 연속성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도시는 일관된 이미지로 보입니다.
일관된 이미지는 몇 개의 모뉴먼트나 랜드마크를 통해서가 아니라 건축과 도시와의 관계의 인식을 통해 더욱 강조되어, 한정된 영역의 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항상 그곳에서 시작되거나 혹은 그곳을 거쳐 가던 긴 행로들과 함께 어떤 장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조직하는 건축가에게 도시란 요원한 파라다이스 같았지만, 만들어지고 있는 공간과 현상들은 사회학적 의미의 도시라기보다는 조형적, 공간적, 경험적 도구로서 훨씬 더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다양한 공간의 체험을 만들 수 있는 이동의 수단들을 통해 장소들을 물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하고, 건축물과 외부공간 그리고 도시 공공영역 사이의 연관성을 회복하고, 도시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모뉴먼트와 랜드마크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내용물을 바꿔 담는다 하더라도 도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은 지속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도시는 항상성을 가진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