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건축협의회 2010 열린 강좌 (2010,8,28)
 
Hear Me? _ 내 목소리가 들리니?

건축가는 건축 작업을 통해 다양한 분야, 새로운 기대, 독특한 사람들과 교차한다. 여기서 일관된 테마 혹은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 마치 로고처럼 나 자신이 유형화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 건축가로서 내가 가진 것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공간과 사건의 본질이 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이것들을 가지고 직관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로서 함께 성장하며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자 한다. “건축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줘요. 그뿐만 아니에요. 건축이 거꾸로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죠. 물론 찰칵 하고 스위치를 누르듯 바로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괴상해 보이던 것이 적당한 때가 오면 정상적이고 친숙한 것이 돼요. 인식은 바뀌어요. 진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바뀌고요. 그래서 저는 진실 자체를 원해요.” 저번 달에 세상을 떠난 독일 건축가 베니쉬의 인터뷰 내용이다.
건축은 우리 각자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인간과 사회는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이 작업은 나의 인식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그들의 세상을 대하는 나의 방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란 모든 것이 인성과 생활로 직결되는 생애 최초의 사회적 공간이다. 이 학교에서 단순하게 청각장애만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감각과 인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있어서 들을 수 없음은 어쩌면 볼 수 없음보다 더한 장애를 만든다. 우리는 정보의 80% 이상을 시각을 통해 얻는다고 하지만, 시각장애인들보다 청각장애인의 복합 장애도는 더욱 높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생처럼 아이들이 어릴 경우 부모들은 대부분 이들을 보통학교로 보내고 싶어한다. 청각장애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학교에 올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 복합장애를 가지고 있고 교육을 받아도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경우가 매우 적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언어나 친구나 인생의 폭은 너무나 좁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발달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고 일반학교의 특수반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곳으로 우회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과정을 다 담고 있지만 나는 이 학교를 초등학교처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인성과 생활로 직결되는 최초의 사회적 공간으로서 말이다.

밸리 댄스를 추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그 아이들이 듣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들에게 학교는 소리가 있는 유일한 공간이며 선생님은 그 소리로 세상과 이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단절되고 소통할 언어가 제한적인 그들에게 부모와 가족, 사회는 모두 벽이다. 선생님과 학교를 통해서만 그들은 말하며 생각하며 인정받고 꿈을 키운다. 시각장애학생들이 수학여행에 꼭 챙기는 것은 카메라이며 청각장애학생들이 하나같이 귀에 꽂고 나타나는 것이 mp3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느끼고 노래를 보고 있었다. 청각장애아에게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고독한 자신만의 세계로부터 나와, 타인과 함께 존재함으로 위안 받을 수 있는 공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상상하게 해주고 싶었고, 공간과 구축방식은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로 연결되어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기를 희망했다.

소리 없는 세상에 사는 이들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나름의 상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곳에는
소리도 있었고 노래도 있었고 감정도 있었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말하며 우리와는 다른 코드로 노래하고 조금 단순한 언어를 쓸 뿐이었다. 표현할 도구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고독
해지기 쉽다. 상태나 감정을 정의할 수 있는 어휘가 많을수록 우리의 감성은 더욱 복잡해져 판단
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가 아무래도 우리에 비해 적다 보니 ? 우리말의 단어수가 약 50만개인데 수화의 단어는 약 1만개에 불과하다 - 판단을 흐리는 애매함도 없고 유창한 언변도 소용이 없다. 나는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었거나 나쁜 공간을 만들어준 사람, 둘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가지의 감각을 뺏긴 이들의 나머지 감각은 더욱 예민해져 그 상실된 감각을 대체한다. 그래서 나머지 감각들을 최대한 자극하고자 했다. 자신을 볼 수 있고, 수화와 필담으로 대화할 수 있으며 좀 더 개방적이고 밝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출발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우선 현재 우리나라 학교 건축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생각을 던져주었다. 일본의 경우 단기간에 대량의 학교를 건설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은 '표준설계'라는 도면을 만들어 권장하게 되었고 이는 학교건축의 획일화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학교 건축도 이와 유사하다. 생각 없이 따르는 표준화된 규격을 가지고 학교 건축은 정지해있다. ""을 건축가 가즈미 구도가 말했고, 지금까지 그래왔다거나 다른 학교와의 균형이 깨어진다는 말은 늘 등장하는 변명이면서도 가장 안전한 장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를 짓는 "모든 비용을 100년으로 나눠보면 1년당 비용은 낮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도심공동화에 대응하는 재생의 가장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바로 학교건축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20, 30년 후 저 출산화가 더 진행되어 초등학교가 더 이상 구실을 못하게 되면 마을체육관이 되거나 문화센터가 되거나 노인복지시설이 될 수도 있으므로 무리한 결합보다는 작은 공간들의 유연한 연결이 최초의 계획에서 고민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도시에서 보여지는 학교의 활력은 나이 들어 침체한 도시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전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능동적 존재이다. 편리함에 길들여지기 보다는 상황과 사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장애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결점이나 약점과 같아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고 선생님들을 말한다. 그릇은 깨어지기 쉬운 것이기에 조심이 다루어야 하고, 흰색은 더럽혀지기 쉽기 때문에 깨끗하게 하고자 노력하며 애착이 생기고, 유리는 깨지기 쉬우나 맑음을 지켜줘야 하고, 에스컬레이터는 위험하니 몸을 기울여 스스로 지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즈미 구도는 적고 있다. 이들은 자기 스스로 발언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알아듣는 힘을 우리가 가지고자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섬세한 행동과 감성의 변화를 존중하여, 둘러앉아 공부하고 싶거나 나의 공간도 있고 우리의 공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건축과 공간은 아이들의 배경이며 끝없이 인성과 자발성을 자극할 수 있을 때 공간은 살아 숨쉰다. 건축에는 힘이 있다. 사람에게는 더 큰 힘이 있다.